[카티클/정지민 에디터] “자동차는 달릴 때 비로소 자동차다.” 너무나 당연한 이 명제가 1년 전, 독일 법원에서 뜨거운 쟁점이 된 적이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영국 애스턴마틴의 하이퍼카 ‘발키리(Valkyrie)’. 한화 약 40억 원을 호가하는 이 차량의 소유주가 잦은 고장을 이유로 환불 소송을 제기하자, 제조사가 내놓은 답변이 전 세계 마니아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결함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이 차가 애초에 ‘주행’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뉘앙스의 방어 논리를 펼쳤기 때문이다.
지난 2024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이 논란은 단순히 한 대의 차량 문제를 넘어, 하이퍼카라는 장르가 가진 본질적인 모순을 드러낸 사례로 남았다. 고객은 도로 위를 달리는 F1 머신을 기대하며 수십억 원을 지불했지만, 제조사는 차고에 모셔둘 예술품을 판매했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과연 기술적 과시욕이 낳은 결과물인 하이퍼카는 ‘탈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값비싼 피규어’인가. 당시 사건을 통해 초고가 한정판 시장의 민낯을 되짚어본다.
생존 필수품이 된 헤드셋, 그 기능의 상실

발키리는 일반적인 승용차와 달리 실내 소음이 극도로 심하다. 차체 자체가 거대한 울림통 역할을 하는 탄소섬유 모노코크 구조에 1만 1,000rpm까지 회전하는 V12 엔진이 운전석 바로 뒤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탑승자는 헬리콥터 조종사처럼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포함된 특수 헤드셋을 착용해야만 한다. 당시 소송의 발단은 이 필수 장비가 먹통이 되면서 시작됐다. 차주는 헤드셋 고장으로 외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고, 긴급 차량의 사이렌 소리조차 인지하지 못해 앰뷸런스와 충돌할 뻔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음악을 듣지 못하는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야가 제한적인 하이퍼카에서 청각 정보의 차단은 곧 운전자의 눈을 가리는 것과 다름없는 심각한 안전 위협이다. 여기에 더해 차량 인도 직후부터 발생한 고전압 시스템의 오류와 기어 변속 불량 등은 차량의 신뢰도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차주는 수차례 서비스 센터를 오가며 수리를 시도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자, 결국 독일 아헨 법원에 차량 인도를 거부하고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제조사 측은 이러한 결함들이 차량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운전자의 과실이라고 반박했다. 레이싱 기술이 집약된 차량인 만큼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데, 차주가 이를 일반 승용차처럼 다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안전 장비인 헤드셋의 고장과 시동조차 제대로 걸리지 않는 전장 시스템의 오류를 모두 운전 습관 탓으로 돌리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아무리 고성능이라도 도로 주행을 인증받은 차량이라면 최소한의 안전 기준은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300km만 타는 차”, 주행거리의 아이러니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애스턴마틴 측의 인식은 더욱 놀라웠다. 그들은 법정에서 “발키리 소유주들의 평균 주행거리는 300km에서 1,000km 수준”이라고 언급하며, 원고의 주행 빈도가 이례적으로 높았음을 암시했다. 이는 사실상 발키리가 도로를 달리기 위한 자동차가 아니라, 수집가들의 차고를 장식하기 위한 ‘전시품’임을 제조사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40억 원짜리 차를 샀지만, 그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행위 자체가 차량 수명을 갉아먹는 비정상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논리였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최신 스마트폰을 샀는데 “하루에 한 번만 켜야 고장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수집 가치가 높은 하이퍼카 시장에서 주행거리가 짧은 ‘민트급’ 차량이 선호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유주의 선택 문제이지, 제조사가 차량의 내구성 부족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300km라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한 번 가면 끝나는 거리다. 이 정도 주행으로 중대 결함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공산품으로서의 기본 자격을 의심해봐야 한다.
결국 “고객이 차를 너무 많이 탔다”는 주장은 제조사가 설계 당시부터 내구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었다. 당시 애스턴마틴은 환불 시 주행거리에 따른 감가상각 비용으로 약 5만 5천 유로(약 8천만 원)를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브랜드의 명예보다는 당장의 손실을 막겠다는 계산적인 대응으로 비쳐, 많은 팬들에게 씁쓸함을 남겼다.
하이퍼카의 환상과 현실적인 품질의 괴리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대의 차량 문제를 넘어, 우후죽순 쏟아지는 한정판 하이퍼카 시장 전체에 경종을 울렸다. 많은 슈퍼카 브랜드들이 ‘도로 위의 레이싱카’를 표방하며 초고성능 모델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도로 환경에서의 신뢰성은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트랙이라는 통제된 환경과 매끄러운 노면을 전제로 설계된 부품들은, 과속방지턱과 정체 구간이 존재하는 일반 도로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렵다. 특히 진동에 취약한 전자 장비들은 고출력 엔진의 진동을 그대로 받아내며 잦은 오작동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발키리의 경우도 엔진과 변속기가 차체의 구조물 역할을 하는 ‘스트레스드 멤버(Stressed Member)’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무게를 줄이고 차체 강성을 높이는 레이싱카의 문법이지만, 그만큼 엔진의 모든 진동과 충격이 차체와 탑승자, 그리고 전자 부품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기술적 성취를 위해 내구성과 편의성을 희생한 결과가 품질 논란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스펙 시트 위의 숫자는 화려할지 몰라도, 실제 소유주가 겪어야 할 스트레스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하이퍼카를 구매할 때 그것이 주는 환상 이면에 감춰진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제조사 역시 ‘예술품’이라는 모호한 방패 뒤에 숨기보다는, 자동차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더욱 투자해야 한다. 40억 원이라는 가격표에는 단순히 희소성이나 브랜드 로고 값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운전자를 안전하게 지키고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적 완성도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불거진 애스턴마틴과 차주의 법적 공방은 하이퍼카 시장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1,000마력이 넘는 출력과 F1 기술도 좋지만, 결국 자동차의 본질은 ‘이동’에 있다는 점이다. 기술적 과시욕이 낳은 결과물이 과연 도로 위를 달릴 자격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박물관에 멈춰 서 있어야 하는지, 제조사는 여전히 답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