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신형 그랜저 페이스리프트의 가격표가 공개되자 자동차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기본 트림 가격이 400만 원 안팎으로 오르면서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진입 장벽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브리드나 3.5 가솔린 AWD 모델에 모든 옵션을 더하면 차량 가격은 6,300만 원에서 6,500만 원 선까지 치솟는다.
재미있는 점은 이 가격이면 한 체급 위인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 K9을 사고도 돈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예산을 조금 더 보태 상위 차종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돈을 절약하며 급을 올릴 수 있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랜저 풀옵션과 K9 기본형 사이의 뜻밖의 하극상을 짚어본다.
가격표의 반란, 6천만 원대 그랜저의 등장

기아 K9 3.8 가솔린 플래티넘 후륜구동 모델의 시작 가격은 약 5,949만 원이다. 반면 신형 그랜저 1.6 하이브리드 풀옵션은 세제 혜택을 감안해도 6,300만 원대에 진입한다. 스마트 비전 루프 등 추가 액세서리까지 포함하면 6,500만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즉, 그랜저 최상위 모델을 계약할 예산이라면 K9 기본형을 구매하고도 취등록세 일부를 충당할 수 있는 300만~500만 원이 남는다. 국민차로 불리던 준대형 세단의 가격 인상이 플래그십 대형 세단과의 가격 역전 현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성비의 기준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시점이다.
4기통 전륜 하이브리드 vs 6기통 후륜구동

가격이 비슷하다면 다음은 차량의 본질적인 뼈대를 비교할 차례다. 6천만 원이 넘는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심장은 4기통 1.6리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의 조합이다. 효율성은 뛰어나지만, 4기통 특유의 한계와 전륜구동 기반의 승차감을 지니고 있다.
반면 그보다 저렴한 K9 기본형은 V6 3.8리터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을 품었다. 실내 정숙성과 6기통 고유의 매끄러운 회전 질감은 4기통 엔진이 물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여기에 후륜구동 특유의 묵직하고 부드러운 승차감까지 더해져 플래그십의 품격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름만 깡통, 플래그십의 넘치는 기본기

흔히 ‘기본형’ 혹은 ‘깡통’이라 부르는 트림에 대한 선입견이 K9에는 통하지 않는다. K9 플래티넘 트림은 기아의 최고 존엄 세단답게 기본 사양부터 화려하다. 14.5인치 대화면 내비게이션, 고속도로 주행 보조 2(HDA2) 등 핵심 편의 및 안전 사양이 모두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신형 그랜저가 페달 오조작 방지 보조 등 최첨단 신기술을 대거 적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체 강성, 서스펜션 구조, 내부 방음 설계 등 태생적인 하드웨어 체급에서 오는 안락함은 옵션으로 채울 수 없는 영역이다. K9은 껍데기만 깡통일 뿐, 내부를 채운 소재와 방음 대책은 이미 완성형에 가깝다.
첨단 기술의 그랜저냐, 웅장한 감성의 K9이냐

물론 차량 유지비 측면에서는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연간 자동차세와 유류비를 고려하면 K9 3.8 가솔린 모델의 유지비 부담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행거리가 길고 도심 주행이 잦다면 그랜저의 하이테크 감성과 경제성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주행거리가 길지 않고 가족을 위한 편안한 승차감과 정숙성을 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른바 ‘하차감’ 측면에서도 대형 세단인 K9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첨단 편의성을 취할 것인지, 내재된 고급스러움과 주행 감성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다.

그랜저의 가격 인상은 역설적으로 K9의 가성비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6천만 원이라는 예산 앞에서 소비자는 더 이상 “돈을 보태 윗급으로 갈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옵션 타협 없이 플래그십을 사고 돈을 남길까”라는 행복하고도 치열한 고민이 시작된 셈이다. 계급장을 뗀 두 세단의 대결은 자동차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