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전기차가 도로의 주류가 된 2026년에도, 보닛 위에서 날개를 펼친 엠블럼의 위용은 여전하다. 제네시스라는 독립 브랜드가 출범하기 전, 대한민국 자동차 공학이 도달했던 정점이자 ‘성공의 아이콘’이었던 현대 에쿠스(VI) 이야기다.
신차 가격 1억 원을 가볍게 상회하던 이 거함은 이제 중고차 시장에서 1,000만 원 안팎의 가격표를 달고 있다. 최신형 아반떼의 절반 가격으로 누리는 기함의 가치는 매력적이지만, 그 이면에 숨은 ‘유지비의 역습’을 이해하는 것이 이 차를 소유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에쿠스의 가치는 문을 닫는 순간 시작된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완성도를 높인 VI 모델은 전 좌석에 2중 접합 차음 유리를 적용해 외부 소음을 극단적으로 차단한다. 2026년에 출시되는 웬만한 신형 대형차와 비교해도 정숙성만큼은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내 공간은 광활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후륜구동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뒷좌석 무릎 공간은 성인 남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도 여유롭다. 특히 리무진 모델이 아니더라도 넉넉한 휠베이스 덕분에 장거리 이동 시 피로도가 현저히 낮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크기를 넘어, 당대 최고의 소재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차가 가진 상징성이다. 보닛 끝에 자리 잡은 에쿠스 전용 엠블럼은 ‘회장님 차’라는 인식을 여전히 유지시킨다.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은 물론, 비즈니스 미팅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서 에쿠스가 제공하는 심리적 무게감은 1,000만 원대 중고차 중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오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최고 사양이었던 DIS(Driver Information System)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느리고 답답하다. 조그셔틀 고장이 잦은 편이며, 수리비 또한 만만치 않다. 최신 자율주행 기능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투박한 UI와 제한적인 연결성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에쿠스 구매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곳은 엔진이 아닌 하체다. 승차감의 핵심인 에어 서스펜션(EAS)은 이 차의 축복이자 저주다. 노후화된 에어 스프링에서 공기가 새기 시작하면 주차 후 차체가 한쪽으로 주저앉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방치하면 컴프레셔까지 고장 나며 수백만 원의 수리비 폭탄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정비 리스크 탓에, 최근 중고차 시장에서는 ‘에어 서스펜션 미적용 모델’이 오히려 더 높은 인기를 누리며 귀한 대접을 받는 추세다.
엔진 역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람다 GDI 엔진은 출력은 좋지만 연식이 쌓이면서 오일을 소모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주기적으로 오일 게이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엔진 보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속은 병들기 쉬운 노령의 기함을 모시는 데는 그만큼의 정성과 비용이 수반된다는 뜻이다.

결국 에쿠스를 선택한다는 건, 10여 년의 세월을 관통한 국산차 기술의 정점을 단돈 1,000만 원대에 소유하는 기회를 잡는 일이다. 보닛 위의 날개 엠블럼이 주는 심리적 만족감은 최신형 준중형차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 찬란했던 유산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때때로 거액의 ‘품위 유지비’를 기꺼이 지불할 용기가 필요하다. 도로 위에서 품격을 뽐내는 ‘가성비 회장님’이 될지, 아니면 정비소 휴게실의 가장 친절한 단골 고객이 될지는 결국 당신의 꼼꼼한 검수와 결단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