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창은 현대기아차를 성토하는 장이었다. “국내 고객은 호구냐”, “수출용엔 강판부터 다른 걸 쓴다더라” 같은 괴담 아닌 괴담이 정설처럼 돌았다.
실제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딜러숍에선 차 한 대를 사면 한 대를 더 얹어준다는 ‘1+1’ 마케팅 소문이 돌았고, 현대차는 가난한 유학생이나 타는 ‘바퀴 달린 가전제품’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2026년 현재, 상황이 기묘하게 돌아간다. 한국 소비자가 “너무 비싸졌다”고 투덜대는 그 차를, 외국인들은 웃돈(프리미엄)을 얹어주며 줄을 서서 산다. 우리가 자조적으로 부르던 ‘흉기차’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가 됐다.
제값 받기 전략의 성공, “할인은 옛말이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위상은 딜러들이 붙이는 가격표가 증명한다. 과거엔 권장소비자가격(MSRP)에서 수천 달러를 깎아줘야 겨우 팔렸다. 딜러에게 쥐여주는 인센티브(판매장려금)가 없으면 차가 주차장에서 썩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텔루라이드나 팰리세이드 같은 인기 모델을 사려면 딜러에게 추가금을 줘야 키를 넘겨받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대당 평균 거래 가격(ATP)은 도요타나 혼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차종에 따라서는 오히려 앞서기도 한다. 싸구려 이미지를 벗기 위해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고, 고수익 SUV 라인업을 대폭 늘린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이제 미국 소비자들에게 현대차는 ‘돈 없어서 타는 차’가 아니라, ‘제값 주고라도 타고 싶은 차’가 됐다. 인센티브 펑펑 쓰며 점유율만 늘리던 ‘밀어내기’ 식 장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폭스바겐 제치고 글로벌 ‘수익성 톱’ 찍었다

더 놀라운 건 덩치(판매량)보다 실속(이익)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판매량 ‘빅3’에 안착한 데 이어,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에서는 폭스바겐그룹을 제치고 글로벌 최상위권에 올랐다. 차를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대를 팔았을 때 남는 장사를 했다는 뜻이다.
특히 유럽 브랜드들이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삐걱거리는 사이, 현대차그룹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조정한 덕분에 경쟁사들이 적자에 허덕일 때 역대급 실적 잔치를 벌였다. 독일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폭스바겐이 구조조정 칼바람을 걱정할 때, 현대차는 성과급 잔치를 고민한다. 이것만큼 확실한 ‘체급 차이’의 증거가 또 있을까.
디자인과 기술로 깐깐한 평단을 매료시키다

이런 변화의 밑바탕에는 결국 ‘상품성’이 있다. 북미 올해의 차, 세계 올해의 차 시상식에서 아이오닉 5, EV6, EV9이 연달아 트로피를 들어 올린 건 우연이 아니다. 자동차의 본고장이라는 유럽과 미국 평단이 한국차의 손을 들어줬다. 과거엔 “가성비가 좋아서” 뽑혔다면, 지금은 “경쟁 차종보다 압도적으로 좋아서” 뽑힌다.
심지어 콧대 높기로 유명한 유럽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제네시스는 ‘아우디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거론된다. 물론 아직 판매량 자체는 독일 3사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벤츠나 BMW와 가격 계급장을 떼고 붙어도 꿀리지 않는다는 평가만으로도 브랜드의 위상은 달라졌다. 도로 위에서 느껴지는 하차감(내릴 때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이제 “내수 차별”이라는 낡은 프레임은 거둬도 좋다. 현대차는 더 이상 자국민을 희생시켜 해외 손실을 메우는 회사가 아니다. 오히려 해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로 국내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가격표를 볼 때마다 손이 떨리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타는 이 차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