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전기차 유지비 ‘0원’ 시대가 단순한 상상을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 진행 중인 현대자동차그룹의 V2G(Vehicle-to-Grid) 실증 사업이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었던 자동차가 에너지를 사고파는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현대차 독자 기술? 테슬라 카피? V2G 팩트체크

V2G 기술을 두고 테슬라의 기술을 카피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V2G는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계 전기차 및 전력 산업계가 공동으로 상용화를 추진 중인 차세대 글로벌 표준 기술이다. 오히려 양방향 충방전의 초기 개념은 일본 닛산이 리프 모델을 통해 먼저 도입한 바 있다.
과거 테슬라는 배터리 수명 저하를 우려해 V2G 도입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최근에야 사이버트럭 등에 유사 기능을 넣기 시작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E-GMP 플랫폼을 통해 V2L 기능을 대중화하며 전력 활용성을 입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력망 전체로 영역을 확장하는 V2G 상용화에 있어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퀴 달린 발전소’, 전력망을 구원하다

V2G, 이른바 ‘바퀴 달린 배터리’ 기술의 핵심은 전력의 효율적인 재분배다. 전기차 배터리에 남는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하거나, 전력 수요가 적어 요금이 저렴할 때 충전하는 원리다. 전력 수요가 치솟는 피크 시간대에는 비싼 값에 전력을 되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이 기술은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한다.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의 잉여 전력을 전기차가 거대한 ESS(에너지 저장 장치)처럼 흡수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력망을 안정화하고 국가적인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EV9·아이오닉 9 차주가 몰린 제주도의 이유 있는 실험

현대차그룹이 제주도에서 시행 중인 V2G 실증 사업은 이러한 가능성을 시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무대다. 아이오닉 9과 EV9 등 최신 차량 차주이면서 개인 주차장과 전용 충전기를 보유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신청자가 몰려 대기자까지 발생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같은 흥행은 새로운 에너지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기대감을 방증한다. 자동차를 굴리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다는 개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V2G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고 본격적인 상용화를 준비할 계획이다.
푼돈에 그친 수익성, 남은 과제는 ‘제도 개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실증 사업 단계에서 차주가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은 월 1~2만 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막대한 배터리 비용과 충방전 장비 투자 대비 수익성이 턱없이 부족하여, 아직은 ‘재테크 수단’으로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전력 판매가 자유로워지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전기차를 공식적인 ‘분산에너지 자원’으로 법률상 인정하고, 한국전력이 아닌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력을 사고팔 수 있는 V2G 전용 요금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규제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 시급한 시점이다.

V2G 기술의 활성화는 전기차가 단순한 친환경 이동 수단을 넘어 수익을 창출하는 ‘에너지 자산’으로 진화함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완성차 업계의 기술 고도화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감한 전력 시장 개방과 제도 개선이 맞물려야 한다. 자동차가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는 진정한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