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내연기관 시대에 뒤처졌던 한국 자동차 산업이 수소라는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 아래 전 세계의 정점에 섰다. 수소차 원조를 자처하던 일본의 토요타조차 상용차 부문에서는 이토록 압도적인 실전 데이터를 쌓지 못했다. 현대자동차의 수소 대형 트럭 ‘엑시언트(XCIENT Fuel Cell)’가 유럽에서 누적 주행거리 2,000만km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이 ‘수소 패권’의 주인임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 수소 상용차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대 규모의 실주행 기록이다. 실험실 안에서의 시뮬레이션이 아닌, 유럽의 험준한 지형과 변화무쌍한 기후 속에서 물류 현장의 최전선을 누비며 얻어낸 값진 훈장이다. 현대차는 이제 추격자가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가 우러러봐야 할 독보적인 선구자가 되었다.
5년 만의 2,000만km 주행

기록의 질이 다르다. 2020년 10월 스위스에서 첫 시동을 걸었을 때만 해도 세계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엑시언트는 불과 5년 4개월 만에 2,000만km를 달성하며 회의론을 완전히 잠재웠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록 달성의 속도다. 첫 1,000만km를 달성하기까지 약 3년 8개월이 걸렸으나, 그다음 1,000만km를 채우는 데는 단 1년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럽 5개국(스위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에서 활약 중인 165대의 엑시언트는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선다. 냉장·냉동 밴부터 청소차까지, 각국의 물류 현장이 요구하는 가혹한 조건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이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내구성이 이미 디젤 엔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8분에서 20분 내외의 짧은 충전 시간으로 400km 이상을 달리는 엑시언트의 효율성은 일본의 기술력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충전 인프라 부족을 탓하며 주춤하던 경쟁사들과 달리, 현대차는 실전 투입을 통해 생태계를 먼저 구축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 결과, 지금 유럽의 물류 동맥은 한국의 수소 기술로 흐르고 있다.
소나무 150만 그루의 가치

엑시언트가 달린 거리는 지구 500바퀴를 도는 것과 맞먹는다. 이 거리를 주행하는 동안 배출된 것은 매연이 아니라 순수한 물뿐이었다. 수치로 환산하면 약 1만 2,885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한 셈이다. 이는 30년생 소나무 150만 그루가 한 해 동안 흡수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놀라운 친환경 성과다.
단순히 탄소를 내뿜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형 수소 트럭은 주행 중 대량의 공기를 흡입해 수소와 반응시키는 과정에서 초미세먼지까지 정화하는 ‘대형 공기청정기’ 역할도 수행한다. 유럽의 물류 기업들이 엑시언트를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면서도 기존 디젤 트럭 수준의 적재량과 등판 능력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하이브리드에 매몰되어 있을 때, 현대차는 수소라는 원대한 비전을 향해 묵묵히 걸어왔다. 그 뚝심은 이제 유럽이라는 까다로운 시장에서 환경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유일무이한 성공 사례로 꽃을 피웠다. 엑시언트의 바퀴가 구를 때마다 지구가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멈추지 않는 수소 영토 확장

현대차의 시선은 이제 유럽을 넘어 북미 대륙으로 향하고 있다. 이미 미국 시장에 투입된 63대의 엑시언트는 최근 누적 주행 160만km를 돌파하며 북미 물류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캘리포니아 항만 물류 프로젝트와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 핵심 거점에서 엑시언트는 장거리 운송의 최적 대안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시스템 출력 180kW급 연료전지를 탑재한 엑시언트는 북미의 광활한 도로 환경에서도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일본 브랜드들이 승용 수소차에 집중하며 시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현대차는 파급력이 큰 대형 상용차 시장을 먼저 장악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글로벌 수소 생태계를 주도하는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현대차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2,000만km 달성은 수소연료전지 기술이 상용화의 문턱을 완전히 넘었음을 의미한다. 독보적인 기술 혁신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무기로, 현대차는 ‘수소 사회’라는 미래 지도를 직접 그려나가고 있다. 이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의 수소 기술 없이는 물류 혁신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자동차 변방이 아니다. 수소 기술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표준을 정립하는 진정한 ‘퍼스트 무버’다. 유럽의 도로 위에서 써 내려간 2,000만km의 기록은 앞으로 현대차가 전 세계 수소 시장을 호령할 거대한 서막에 불과하다. 엑시언트가 열어젖힌 수소의 미래, 그 중심에는 자랑스러운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긍심이 박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