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1987년 삼월, 세상에 처음 나왔던 그 작고 야무진 녀석을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거다. 이름부터 당당했던 ‘프라이드’. 사회초년생 딱지를 달고 처음으로 내 차 마련의 꿈을 꿨을 때, 우리 곁을 지켰던 건 언제나 이 녀석이었다.
그 시절 프라이드는 말 그대로 ‘기아의 실수’였다. 마쓰다가 설계하고 포드가 팔고 기아가 만들었는데, 이게 어찌나 단단했는지 도무지 고장이 나질 않았다. 기아가 차를 너무 튼튼하게 만드는 바람에 다음 차가 안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전국적으로 돌았을 정도였다.

파워 핸들이 없어 주차할 때마다 팔뚝에 힘줄 좀 세워야 했고, 언덕길에선 에어컨을 잠시 꺼야 숨통이 트였지만, 그래도 그 녀석은 우리를 어디든 데려다주던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런 프라이드가 4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영국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제 기름 냄새는 깨끗이 지우고, 조용한 전기 모터를 달아 ‘프라이드 EV’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국 기아 법인이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2024년에 딱 한 대를 제작했다. 옛날 그 12인치짜리 조그만 바퀴에 투박한 껍데기는 그대로지만, 그 안을 채운 기술력은 완전히 딴판이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역시 힘이다. 우리 기억 속 프라이드는 겨우 60마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전기 프라이드는 무려 107마력을 뿜어낸다. 치고 나가는 힘인 토크는 예전보다 두 배나 세졌다. 0에서 100km까지 달리는 데 8초면 충분하니, 이제 가파른 언덕길에서 맥을 못 추던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요즘 나오는 전기차는 심심해서 못 타겠다는 동년배들이 많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 갈증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5단 수동 변속기를 그대로 유지했다. 왼발로 클러치를 꾹 밟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착착 넣어가며 달렸던 그 시절의 묵직한 손맛을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더욱 정겹다. 요즘 애들 차처럼 눈부신 화면은 없지만, 바늘이 움직이는 아날로그 계기판이 우리를 반긴다. 시트에는 요즘 기아 전기차에 쓰인다는 라임색 선을 넣어 슬쩍 멋을 부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은퇴 후 등산복을 챙겨 입은 우리네 모습과 닮아 괜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쉽게도 이 차를 우리가 직접 소유할 기회는 없다. 영국에서 이벤트용으로 단 한 대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 청춘의 상징이었던 프라이드가 여전히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이렇게 멋지게 부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기에 충분하다.
누군가는 구식이라 부를지 모르나, 우리에겐 인생의 첫 페이지를 함께 쓴 자부심이었다. 비록 엔진 소리는 사라졌어도, 이 프라이드 EV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당신의 청춘도, 그 시절 프리이드도 아직은 현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