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불과 4년 전만 해도 1억 원을 훌쩍 넘겼던 수입 플래그십 세단이 있다. 벤츠 엠블럼에 최상위 전기차라는 상징성까지 갖췄지만, 현재 중고차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2022년식 일부 차량의 중고 시세가 6천만 원 안팎까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1억3,890만 원에 달했던 신차가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이 극적인 감가의 주인공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래그십 전기 세단 ‘EQS 350(V297)’이다. 플래그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진 현재 시세는 고가 전기차 시장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억3천만 원 훌쩍 넘겼던 ‘전기차의 S클래스’

2022년 6월 국내 공식 출시된 EQS 350의 신차 가격은 1억3,890만 원이었다. 90.6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해 산업부 인증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 440km를 확보했고, 최고출력은 215kW(약 292마력)를 발휘했다. 당시 벤츠가 전동화 시대의 럭셔리를 표방하며 내놓은 EQS 라인업의 엔트리 모델 역할을 맡았다.
이 차량은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 S클래스급의 고급 편의장비와 넉넉한 공간을 갖춘 최상위 모델이었다. 공기역학을 극대화한 특유의 활(Bow) 디자인과 럭셔리한 실내 소재는 억대 가격표에 걸맞은 구성을 보여줬다. 출시 초기만 해도 1억 원 중후반대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소유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높은 차였다.
4년 만에 6천만 원대로 주저앉은 잔존가치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주요 중고차 플랫폼에서 확인되는 2022년식 EQS 350의 가격표는 낯설기만 하다. 주행거리와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22년식 매물 상당수가 5천만 원 후반대에서 6천만 원 중후반대에 등록되어 있다. 1억3,890만 원이었던 신차 가격과 비교하면 약 7,400만 원가량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이를 잔존가치로 환산하면 약 46% 수준에 불과하며, 감가율은 무려 54%에 달한다. 4년 동안 신차 가격 기준으로 매년 평균 1,80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증발한 것과 같다. 다만 현재 시장에 형성된 6천만 원대 가격은 매물 호가 기준이며, 실제 딜러와 소비자 간의 거래 가격은 이보다 더 낮게 형성될 여지도 있다.
플래그십 전기차의 추락, 그 배경은?

벤츠의 최상위 모델이 이토록 큰 폭의 감가를 겪은 데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가장 큰 원인은 신차 시장에서의 파격적인 할인 프로모션이다. 2023년과 2024년을 거치며 수입차 업계는 고가 전기차 재고 소진을 위해 수천만 원에 달하는 대대적인 할인을 진행했고, 이는 곧바로 중고차 시세 하락으로 직결됐다. 중고차는 결국 ‘실제 신차를 얼마에 살 수 있느냐’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가 전기차 자체의 제한적인 수요와 전기차 특유의 빠른 기술 발전 속도도 영향을 미쳤다. 내연기관 고급차는 시간이 지나도 파워트레인의 세대교체 체감이 덜하지만, 전기차는 주행거리나 충전 속도 등 배터리 기술의 기준 자체가 빠르게 변한다. 이러한 기술적 격차가 중고 시장에서 초기 전기차 모델의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다수 확인된다.
제네시스 값에 타는 벤츠 전기차, 매력 있을까?

끝없이 추락한 가격은 역설적으로 중고차 구매자에게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신차 시절 1억4천만 원에 육박했던 벤츠의 플래그십 전기 세단을 국산 신형 E클래스나 제네시스 상위 트림을 살 수 있는 6천만 원대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440km에 달하는 인증 주행거리와 대형 세단의 안락함이라는 본질적 상품성은 여전히 뛰어나다.
다만 저렴해진 차값만 보고 덥석 구매하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보증 기간이 끝난 고가 수입 전기차 특성상, 향후 배터리 등 핵심 부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수리비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매 전 배터리 진단 이력, 잔여 보증 조건, 충전 이력 등을 꼼꼼히 따져본 뒤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EQS 350의 가파른 시세 하락은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의 빠른 변화와 가격 재편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구매자에게는 뼈아픈 수준의 감가지만, 중고차 소비자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웠던 플래그십 전기 세단을 절반 가격에 소유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열렸다. 낮아진 차량 진입 장벽만큼이나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유지보수 비용을 엄격하게 계산해 접근한다면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