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2024년 1월, 고가 법인차의 사적 유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연두색 번호판’ 제도가 시행 3년 차를 맞았다. 도입 당시 정부는 8,000만 원 이상 고가 차량에 눈에 띄는 색상을 입혀 ‘낙인 효과’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도로 위 연두색 번호판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부의 설계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탈세를 감시하는 ‘빨간 글씨’가 아니라, 오히려 “나는 고가 법인차를 끄는 능력 있는 대표”임을 인증하는 일종의 ‘성공 징표’로 인식되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도 시행 초기만 해도 기업인들은 연두색 번호판 부착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색상은 ‘상위 1% 법인 대표’를 상징하는 시각적 계급장으로 변질됐다.
최근 강남 일대 비즈니스 모임에서는 “연두색 번호판 정도는 달아줘야 제대로 사업하는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익명성 뒤에 숨는 대신, 오히려 고가의 법인차를 운용할 만큼 건실한 회사를 경영하고 있음을 과시하는 ‘럭셔리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2025년 7월, 차량 가액을 낮게 적어내 연두색 번호판을 피하는 ‘다운 계약’을 막기 위해 기준 가격 산정 방식을 대폭 강화했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양극화됐다.
규제 가이드라인 아래로 사양을 낮추는 ‘꼼수’가 여전한 반면, 초고가 수입차 브랜드 구매자들은 “어차피 법인차인 거 다 아는데, 당당하게 연두색을 달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하고 있다. 번호판이 차량의 가격대를 8,000만 원 이상으로 보증해 주는 효과를 내면서, 일부 수입차 전시장에서는 연두색 번호판이 주는 특유의 아우라(?)를 선호하는 기현상마저 포착된다.

전문가들은 연두색 번호판이 가져온 ‘심리적 감시’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분석한다. 제도가 정착되면서 대중은 연두색에 익숙해졌고,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의 상징’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무늬만 법인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번호판 색상이라는 1차원적 규제를 넘어, 실제 운행 기록부 점검 강화와 사적 유용 적발 시 강력한 세무조사 등 실질적인 ‘징벌적 시스템’이 더 촘촘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두색 번호판은 한국 사회의 강렬한 ‘과시 욕구’가 정부의 규제 논리를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됐다. 감시를 위해 도입한 색깔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이 기묘한 풍경은, 정책이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문화적 맥락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제는 연두색 번호판이 ‘특권의 상징’이 아닌 ‘준법의 상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