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티클/정지민 에디터] “중국산 전기차는 무조건 싸야 팔린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이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5일 사전계약에 돌입한 중국 지리자동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Zeekr)의 중형 전기 SUV ‘7X’가 그 주인공이다.
출시 전 가격이 유출됐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각에서는 “5천만 원이 넘는 중국차를 누가 사겠냐”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전계약 개시 엿새 만에 누적 계약 500대를 돌파하며 보기 좋게 초기 흥행에 성공했다.
깡통 대신 풀옵션.. 통념 깬 프리미엄 전략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계약 물량의 질적인 측면이다. 전체 사전계약 물량의 90%가량이 6000만 원에 육박하거나 7000만 원을 넘나드는 상위 트림에 집중됐다. 5299만 원짜리 엔트리 모델인 ‘프로’ 대신 5999만 원의 ‘맥스’와 6999만 원의 ‘울트라’ 트림을 선택한 소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초기 전기차 구매층이 저렴한 가격보다는 배터리 사양, 긴 주행거리, 고성능을 우선시했다는 명백한 방증이다. 무리한 원가 절감 대신 제대로 된 상품성과 프리미엄 가치를 갖춘다면, 한국 소비자들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사실을 지커가 증명해 낸 셈이다.
대형 SUV 뺨치는 공간과 유러피언 실루엣

지커 7X가 깐깐한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던 배경에는 스웨덴 지커 디자인 스튜디오의 공이 컸다. 자칫 투박해지기 쉬운 SUV의 한계를 벗어나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쿠페형 실루엣을 완성했다. 최대 21인치 휠과 짧은 오버행을 적용해 도로 위에서 다이내믹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압도적인 실내 공간이다. 전장은 4800mm로 중형급에 속하지만, 실내 거주성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무려 2900mm에 달한다. 사실상 대형 SUV에 맞먹는 쾌적한 2열 공간을 확보했으며, 539L의 넉넉한 트렁크 용량까지 챙겨 패밀리카로서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16분 초급속 충전과 645마력의 폭발적 성능

파워트레인과 배터리 제원 역시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와 정면 승부를 벌일 만한 수준이다. 수요가 몰린 맥스와 울트라 트림에는 CATL이 공급하는 100kWh 대용량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탑재됐다.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해 최대 360kW급 초급속 충전을 지원하며, 단 16분 만에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동력 성능 또한 스포츠카를 뺨친다. 듀얼 모터를 얹은 울트라 트림은 시스템 최고출력 645마력, 최대토크 72.4kg·m의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단 3.9초에 불과하다. 아울러 맥스 트림 기준 483km의 1회 충전 복합 주행거리를 확보해 기계적인 완성도와 실용성을 동시에 잡았다.
하이엔드 편의 사양과 공격적인 인프라 확장

안전 및 편의 사양도 아낌없이 담아내며 상품성을 끌어올렸다. 비록 라이다 센서는 제외됐지만, 고해상도 카메라와 레이더 기반의 레벨 2 주행 보조 기능이 전 트림에 기본으로 탑재된다. 여기에 전 좌석 자동문과 차량용 냉온장고 등 하이엔드급 편의 사양을 대거 적용해 럭셔리 포지셔닝에 쐐기를 박았다.
수입 전기차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사후 관리 인프라도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지커는 강남 브랜드 갤러리를 비롯해 전국 9개 거점에 전시장을 오픈하며 빠르게 소비자 접점을 늘리고 있다. 연내 전국 14개 판매 지점과 제주를 포함한 11개 내외의 전용 서비스 센터를 구축해 정비에 대한 불안감을 확실히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다.

결국 지커 7X의 이례적인 초기 흥행은 “압도적인 상품성 앞에서는 국적에 대한 편견도 무의미하다”는 냉혹한 시장의 진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섣부른 가격 논란을 딛고 단 엿새 만에 500대 계약이라는 묵직한 성적표를 내민 지커가, 향후 국내 전기차 생태계에 어떤 메기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